1주 4일

아침의 누림

22:1 또 그 천사는 나에게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와 그 성의 길 가운데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벧전 2:9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받은 족속이고, 왕들인 제사장 체계이며, 거룩한 나라이고,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시어 자신의 기묘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미덕들을 널리 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그림에 따르면, 보좌의 권위와 생명의 교통은 바로 새 예루살렘의 건축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스가랴서 612, 13절과 일치하는데, 이 구절들은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이 주 예수님의 예표인 여호수아 안에서 합쳐지며, 이렇게 합쳐지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것임을 말해 준다.

오늘의 읽을 말씀

하나님의 보좌는 새 예루살렘의 중심이다. 이 보좌가 왕의 직분이고 권위이며, 머리의 권위이고 주님의 권위이다. 그리고 이 보좌로부터 강이 흘러나온다. 이것이 제사장 직분이다. 보좌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 왕의 직분이다. 흐름은 교통을 가져오는 제사장 직분이다. 우리 자신을 주님께 열어 놓을 때,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가실 수 있도록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넘치게 하실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제사장 직분의 교통 안에 있고, 이 교통의 흐름은 보좌의 권위를 가져온다. 새 예루살렘 전체는 보좌와 생명수의 흐름 아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건축물 전체가 왕의 직분과 더불어 제사장 직분 아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위치를 제사장들과 왕들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장자권이다. 우리는 제사장들과 왕들로서 하나님의 집에서 태어났다. 이제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지위를 담대하게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선포하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소유하시고 적시셔서 우리로부터 흘러나가실 수 있도록 반드시 우리 자신을 주님께 열어드려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제사장 직분의 흐름을 갖게 될 것이고, 그 흐름 안에는 왕의 직분의 권위가 있다.

우리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집회에 온다. 우리는 다만 제사장들과 왕들로서 행동한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집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흐름이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도록 우리 자신을 열어 주님께 무언가를 표현한다. 일단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통로를 갖게 되시면, 우리에게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흐르는 흐름은 아주 강해져서 집회 전체가 생명수의 흐름이 될 것이다. 그곳에 생각을 사용하는 가르침은 없을 것이며, 다만 영의 훈련을 통해 생명수의 흐름만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 자신을 열어 놓고, 주님께서 흘러 들어오시어 우리를 변화시키시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권위를 갖게 되고, 질서를 찾게 될 것이다. 집회에는 머리의 권위와 함께 생명의 흐름이 있을 것이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하나님의 건축을 위해 이러한 두 가지의 사역이 필요하다. 베드로전서 25절과 9절은 영적인 집이 건축된 것이 제사장 체계이며, 이 제사장 체계는 거룩하고도 왕의 신분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 제사장들은 왕들이다. 그들은 교통과 권위를 아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이 내적인 생명과 주님의 머리의 권위를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안에는 흐르는 생명이 있어야 하며, 또한 우리는 주님의 머리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한다.

교회는 민주주의도 아니고 독재도 아니다. 교회생활은 왕의 직분의 문제이다. 어떤 형제에게 말하려고 할 때, 나는 주님의 머리의 권위 아래에서 말해야 한다. 나에게는 주님을 떠나서 어떤 것도 말할 자유가 없다. 이것은 사람의 통제가 아니라 몸을 다스리는 머리의 통제이다. 만일 우리가 이 머리의 권위 아래 있다면, 우리는 권위를 갖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권위를 행사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머리의 권위 아래 있다면, 그들은 여러분 안에 권위가 있다는 것을 감지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우리가 제사장들과 왕들로 태어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함으로써 이 위치를 취하여, 실지로 제사장 직분을 맡고 또 머리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한다. 그때 주님의 머리의 권위와 함께 생명의 교통이 교회를 건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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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3일

아침의 누림

1:26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듭시다. 그리고 그들이 …온 땅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통치하게 합시다.”

1:5-6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분 자신의 피로 우리를 우리의 죄들에서 해방시켜 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왕국이 되게 하시어 그분 자신의 하나님, 곧 그분 자신의 아버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되게 하신 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히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신 이유는 사람을 그분의 표현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분의 통치권을 주셔서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게 하셨다. …형상의 노선은 바로 제사장 직분의 노선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께서 속에서부터 흘러나오실 수 있도록 허락해 드릴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사십 일 동안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면서 하나님과 교통하였다.그 결과 그는 하나님으로 적셔졌고,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그 사십 일 동안 모세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그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하나님과 함께 머물렀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 자신을 접촉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흐르시고 그를 적시시도록 허락해 드림으로써, 그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이들이 실지적으로 제사장의 생활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의 읽을 말씀

우리는 쉽게 권위의 노선과 왕의 노선을 연계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받아 하나님을 위해 다스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형상과 권위의 이 두 노선은 바로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의 두 노선이다. 이 두 노선은 시작부터 끝까지 완전히 성경 전체를 관통한다. 성경은 그 시작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에 대해 말하면서 바로 형상과 권위를 언급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그분 자신의 피로 우리를 우리 죄들에서 해방시키셔서 우리를 제사장이 되게 하셨다고 말하며, 주님께서 우리를 제사장들과 왕국에 되게 하셔서 이 땅에서 왕으로서 다스리게 하셨고, 우리가 부활하여 영광 안에 들어갈 때 주님과 함께 왕으로서 다스리는 제사장들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최종적으로 새 예루살렘이 출현할 때에 이 거룩한 성은 벽옥과 같을 것이다. 벽옥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인데, 이는 하나님의 모양이 바로 벽옥과 같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성에서 생명수, 곧 생명의 영께서 흐르시면서 성 전체를 하나님으로 가득 채울 것이며, 그 결과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표현될 것이다. 더 나아가 성의 외형이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도록 한다. 동시에 새 예루살렘의 한 부분이 된 사람들은 영원토록 왕들로서 다스리고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할 것이다.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이라는 이 두 노선은 성경 전체를 관통한다. 제사장 직분은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고, 왕의 직분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도록 한다. 제사장 직분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도록 하고, 왕의 직분은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가지도록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분의 의도는 사람이 제사장이 되는 것, 곧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흐르시도록 허락해 드리며,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또한 사람이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기를 의도하셨다.

사람의 창조에는 두 가지 주된 방면이 있는데, 바로 형상과 권위 혹은 통치권이다. 형상은 하나님의 표현을 가리키고, 통치권은 하나님을 대표하여 그분의 대적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면이 본래 하나님의 의도였다. …성경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 두 노선, 곧 형상과 표현의 노선, 그리고 통치권과 대표의 노선이 있다.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것이다. 제사장들은 주님을 누려서 주님의 표현과 나타남과 처소와 거처가 된다. 제사장 직분을 통해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과 표현을 완전하게 얻으신다. 반면 왕의 직분은 권위와 통치권을 위해 있다. 왕들은 하나님을 대표하여 그분의 원수를 처리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본래부터 가지고 계셨던 두 가지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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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2일

아침의 누림

14:18 그리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가 주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는 주로 대제사장이시다. …히브리서의 초점은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이고,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에 관한 주된 요점은 그분께서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이며, 히브리서는 주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시지만, 그분의 신분은 왕이다. 제사장으로서 기능을 발휘하실 때에 동시에 그분은 왕이시다. …그분은 왕의 직분과 제사장 직분을 다 가지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건축과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의 직분은 의를 통하여 평화로운 질서를 유지한다. 평화로운 질서는 하나님의 건축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집의 건축은 평화로운 상황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의 건축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는 사역을 수행하며, 이 제사장 직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가련한 죄인들을 위해 희생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왕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승리한 용사들에게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을 공급하기 위해서, 대제사장은 반드시 의의 왕과 평안의 왕 둘 다가 되어야 한다.

오늘의 읽을 말씀

그리스도는 능력과 권위를 가진 왕이실 뿐 아니라 또한 대제사장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승천 안에서 수행하시는 하늘에서의 사역은 그분의 왕의 직분과 제사장 직분을 모두 포함한다. 왕으로서 그리스도는 땅을 다스리고 우리의 일들을 관리하시는 지휘봉을 가지고 계시며,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고 우리의 상황을 돌보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땅에서의 사역에서 죄를 없애시기 위하여 아론의 계통에 따른 대제사장이셨다. 그런 다음, 그리스도는 하늘에서의 사역에서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대제사장으로 인정되셨다. 이 대제사장은 이제 죄 때문에 희생제물을 바치는 분이 아니라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 곧 육체되시고 인간생활을 사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공급하는 분이시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 공급인 떡과 포도주로 상징되었는데, 이러한 공급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철저히 구원받을 수 있다.

성경에 따르면 제사장 직분에는 세 방면이 있는데, 바로 아론의 제사장 직분의 방면과 왕의 제사장 직분의 방면과 신성한 제사장 직분의 방면이다.

아론의 제사장 직분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비해, 왕의 제사장 직분은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분배하고 나누어 주어 우리의 매일의 공급이 되게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먹고 마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한 계획 안에서 처음에 갖고 계신 의도였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한 계획 안에서 의도하신 것은 그분 자신을 사람 안에 분배하여 사람의 모든 것이 되게 하심으로 사람을 그분의 완전한 표현이 되게 하시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도는 우리의 매일의 공급으로서 우리에게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을 공급하는, 그리스도의 왕의 신분을 지닌 제사장 직분에 의해 성취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성취되기 전에 죄가 들어왔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사탄이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기 위해 죄를 가져왔기 때문에, 죄의 문제는 해결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아론의 제사장 직분이 필요했다.

죄는 끝났지만 그것은 엄청난 결과인 죽음을 가져왔다. 로마서 5장에 따르면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우리는 죽음을 사람의 관념의 좁은 관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죽음에 대한 가장 폭넓은 이해에 따르면, 죽음은 공허와 부패와 한숨과 탄식과 썩음을 포함한다. 모든 것들은 썩어가고 있다. …로마서 5장에서 우리는 죄와 죽음을 보며, 8장에서는 공허와 부패와 묶임과 탄식과 썩음을 본다. …죽음의 결과로 인해, 우리는 신성한 제사장 직분이 필요하게 되었다. 신성한 제사장 직분에는 죽음이 전혀 없고 오직 생명만 있다. …죽음의 부산물들에서 구원받은 것은 구주의 구원이 아니라 신성한 제사장 직분의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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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1일

아침의 누림

6:12-13 …만군의 여호와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보좌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보좌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스가랴서 1장부터 6장까지에서 위로와 위안과 격려를 주는 여덟 이상들은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연결된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이 씌워진 것으로 확증된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은 다윗의 순으로서 왕의 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제사장 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스가랴서 611절부터 13절까지에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이 두 사람으로 예표되신 그리스도는 두 직분, 곧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을 지니신 유일한 분이시다. 인류 역사 전체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행정 안에서 이 두 직분에 대한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유일한 분이시다. 따라서 히브리서 7장에서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으로 예표되신 것처럼 대제사장과 왕 모두이시다. 멜기세덱은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 모두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행정 안에서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 모두를 갖고 계신 분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스가랴서 613절에서 이 둘 사이는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 사이를 의미한다. 구약에서는 어떤 왕도 제사장이 될 수 없었지만, 천년왕국에서는 그리스도와 이기는 이들 모두가 다스리는 왕들과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될 것이다. 이 두 직분은 그리스도와 이기는 이들 모두 안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오늘의 읽을 말씀

스가랴서 612절과 13절은 그리스도께서 가지이시라고 말하고, 또한 제사장과 왕 둘 다로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이사야서 42절과 111절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순이시며 또한 이새의 가지이시다. 인성에 있어서 그분은 이새의 가지이시고, 신성에 있어서 그분의 여호와의 순이시다. 이 말씀에 따라 우리는 가지가 그분의 육체 되심, 곧 그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지라고 불리시는 이분은 그 안에 신성과 인성을 다 지니고 계신다. 그분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순이시며, 또한 사람에게서 나온 가지이시다.

그리스도는 바로 순으로서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 이 두 가지 사역을 담당하시면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신다.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제사장이자 왕이시다. 여호와의 성전을 합당하게 건축하기 위해 순이신 그분은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 모두를 지니셔야 한다.

요한복음 15장은 우리가 이 순의 가지들이라고 말한다. 이 순은 참포도나무이고, 우리는 이 순의 작은 가지들이다. 우리는 육체가 되신 분의 가지들이다. 이것은 매우 기본적인 항목이다. 왜냐하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육체 되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회란 다만 믿는 사람들의 무리가 아니다. 교회는 특별하고 기이하며 놀라운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교배종(交配種)’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 단어는 두 생명이 함께 연합된 것에 대한 그림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가장 높은 수준의 교배종이다. …우리는 특이한 사람들이지만 아주 기묘하고 놀라운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과 하나님의 연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순의 작은 가지들이다. 우리가 다만 사람으로서만 산다면, 우리는 실재에 있어서 교회의 지체가 아니다. 우리는 교배종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말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은 특이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로 그 순의 가지들이며, 또한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이라는 이중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스가랴서 3장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성전 건축과 관련되어 있고, 4장에서 유다 총독 스룹바벨도 성전 건축과 관련되어 있다.

학개서 11절과 2절에서 총독과 대제사장이 함께 언급된다. 대제사장은 제사장 직분을 나타내고, 총독은 왕의 직분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은 둘 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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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1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

성경: 6:11-15, 1:26, 벧전 2:5, 9, 4:16, 22:1

. 위로와 위안과 격려를 주는 스가랴서 안의 이상들은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연결된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이 씌워진 것으로 확증된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은 다윗의 순으로서 왕의 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제사장 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6:11-15.

A.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순이신데, 이것은 그분의 신성을 가리킨다. ‘여호와의 순은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그분의 신성 안에서 인성 안으로 뻗어 내시도록,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육체 되심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발전이 되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 우주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증가와 확장을 위한 것이다.

B. 그리스도는 또한 (스룹바벨로 예표되는) 다윗의 순이신데, 이것은 그분의 인성과 왕으로서의 신실함을 가리킨다.

C. 스가랴서 611절부터 13절까지에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이 두 사람으로 예표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 건축을 위한 하나님의 행정 안에서 두 직분, 곧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을 지니신 유일한 분이시다.

D.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이 둘 사이라는 말은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 사이를 의미한다.

. 히브리서의 초점은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이고,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에 관한 주된 요점은 그분께서 멜기세덱으로 예표되신 것처럼 대제사장과 왕(의의 왕과 평안의 왕) 모두이시라는 것이다5:10, 7:1-3, 28, 8:1-2.

A. 그리스도는 능력과 권위를 가진 왕이실 뿐 아니라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대제사장이시다.

1. 그리스도께서 승천 안에서 수행하시는 하늘에서의 사역은 여호와의 성전, 곧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한 그분의 왕의 직분과 제사장 직분을 모두 포함한다.

2. 왕으로서 그리스도는 땅을 다스리고 우리의 일들을 관리하는 지휘봉을 가지고 계시며,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계시고 우리의 상황을 돌보고 계신다.

B.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왕의 신분을 지닌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하나님을 우리의 공급으로서 우리 안에 넣는 사역을 수행하신다.

1. 그리스도는 그분의 땅에서의 사역에서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 아론의 계통에 따른 대제사장이셨다.

2. 그 후에 그리스도는 그분의 하늘에서의 사역에서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셨다. 이러한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는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으시고, 떡과 포도주로 상징되신, 육체 되심과 인간 생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의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 자신을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우리에게 넣어주는 사역을 수행하시는데, 이것은 우리를 양육하고 신선하게 하고 부축하고 위로하고 강화하심으로 우리를 철저히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C. 그리스도의 왕의 신분을 지닌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항해 싸워 의와 평안을 가져옴으로, 그리스도께서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을 우리의 매일의 공급과 누림으로 우리 안에 넣어 주는 사역을 수행하시기 위한 것이다.

D. 그리스도의 신성한 제사장 직분은 죽음의 모든 부산물, 곧 공허와 탄식과 한숨과 썩음과 묶임과 부패와 속박과 같은 것으로부터 우리를 그분의 생명 안에서 철저히 구원하여, 영광스럽게 됨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분의 신성한 제사장 직분에는 죽음이 전혀 없고 오직 생명만 있다.

.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은 하나님의 형상과 통치권을 위한 것이다. 제사장 직분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갖게 하고, 왕의 직분을 사람으로 하나님의 통치권을 갖게 하여 하나님의 본래의 의도를 성취한다.

A. 사람의 창조에는 두 가지 주된 방면이 있는데, 바로 형상과 통치권이다. 형상은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것이고, 통치권은 하나님의 원수를 처리하도록 하나님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다.

B.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제사장들은 주님을 누림으로,주님의 표현과 나타남과 처소와 거처(그분의 거룩한 제사장 체계인 그분의 영적인 집)가 된다.

1. ‘형상의 노선은 제사장 직분의 노선인데,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과하여 흐르시도록 허락해 드릴 때에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 안에서 표현되실 수 있기 때문이다.

2.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을 접촉함으로 하나님과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고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이 됨으로,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C. 왕의 직분은 주님의 권위, 곧 주님의 통치권을 위한 것이다. 왕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원수를 처리한다.

1. ‘통치권의 노선은 왕의 직분의 노선인데, 이것은 왕이 하나님을 위해 왕으로서 다스리도록 하나님에게서 권위를 받기 때문이다.

2. 왕의 직분은 (넘치는 은혜와, 은혜가 내적으로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에 의해) 사탄과 죄와 죽음을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림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하나님의 통치권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다.

D.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성취된 구속은 우리를 왕국이 되게 하여 그분 자신의 하나님, 곧 그분 자신의 아버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되게 하였다’.

E. 천년왕국에서 이기는 이들은 한 면으로 제사장들이 되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가까이할 것이고, 다른 한 면으로는 왕들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민족들을 다스릴 것이다.

F. 패배한 믿는 이들은 이 보상을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천년왕국에서 처리를 받은 후에, 패배했던 이 믿는 이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으로서 제사장 직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왕의 직분 안에서 하나님을 대표함으로 이 보상의 축복에 참여할 것이다.

1. 새 예루살렘이 나타날 때, 거룩한 성은 벽옥과 같다. 벽옥은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모양이 벽옥과 같기 때문이다. 거룩한 성 안에는 생명수, 곧 생명의 영께서 흐르시어, 이 성을 하나님으로 채우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표현이 완전히 실현된다.

2. 그뿐만 아니라, 새 예루살렘의 한 부분이 된 사람들은 영원토록 왕들로서 다스리고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할 것이다.

. 요한계시록 221절에서 보좌와 생명수의 강은 그리스도께서 왕과 제사장 모두이시라는 것을 말해 준다.

A. 새 예루살렘의 그림에 따르면, 보좌의 권위와 생명의 교통, 곧 생명의 흐름은 새 예루살렘의 건축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스가랴서 612, 13절과 일치하는데,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이 주 예수님의 예표들인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안에서 합쳐지는 것에 대해 말한다.

1. 생명수의 강, 곧 생명의 흐름은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잠기게 하는 신성한 교통이며,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표현을 가진 거룩한 제사장 체계를 위한 것이다.

2.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는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머리의 권위이며, 하나님의 통치권 곧 하나님의 왕국을 가진, 왕인 제사장 체계를 위한 것이다.

B.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보좌를 만지며, 하나님께서 생수의 강들로서 그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 안으로 흘러가시도록 허락해 드린다. 보좌로부터 나와서 우리 안으로 흐르고 우리로부터 흘러 나가는 생명수의 흐름이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하는 유일한 길이다.

C. 히브리서에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믿는 이들을 지성소 안으로, 곧 하나님과의 교통 안으로 이끄신다. 마태복음에서 왕이신 그리스도는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사람에게 가져오는 분이시다.

1. 히브리서는 성의 건축에 대해 말하는데 비해, 마태복음은 교회의 건축에 대해 말한다. 교회의 건축과 성의 건축은 동일한 것이다.

2.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제사장과 왕 모두이시다. 그리스도 안에는 제사장 직분의 교통과 왕의 직분의 권위가 있으며, 이 둘은 모두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있다. 한 면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위해 우리에게 생명의 교통을 흘려보내시고, 또 다른 면에서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해 우리를 보좌의 권위 아래로 이끄신다.

D. 베드로전서 29절은 구속받은 사람들이 왕들인 제사장 체계라는 것을 계시한다. ‘왕들인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왕(보좌)의 위치와 권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제사장 체계라는 말은 우리에게 생명의 교통(생명수의 강)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E. 우리 가운데 각 사람은 왕인 제사장, 곧 보좌에서 나오는 생명의 흐름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각 사람 안에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 모두의 표현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 대해 갖고 계신 의도는 그들을 제사장들의 왕국이 되게 하는 것이다.

. 히브리서 416절에 따르면, 제사장으로서 사역하는 길은 긍휼을 받고 은혜를 입어서 때맞추어 도움을 얻기 위하여, 단순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A. 우리는 히브리서 416절을 요한계시록 221절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221절은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온다고 말한다.

B. 우리가 우리의 영 안에서 기도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만짐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주목하고 접촉할 때, 우리는 그 영께서 우리 안에서 흐르시고, 우리를 통해 흐르시며, 우리를 공급하시는 것을 체험한다.

C. 생명의 영의 이러한 공급, 곧 이러한 흐름이 때맞추어 얻는 도움이고, 이 도움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이다. 긍휼과 은혜는 우리를 통하여 흐르시고 우리가 얻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D. 때맞추어 얻는 도움은 살아 계신 하나님 곧 흐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고 우리를 통하여 흐르시어, 우리를 신선하게 하고 적시며 공급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서 이 보좌를 접촉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흐르시어 우리를 신선하게 하고 적시시며, 우리는 환경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하게 된다.

E. 믿는 이들에게 이 보좌는 은혜의 보좌이지만, 하나님의 원수에게는 권위의 보좌이다. 은혜의 보좌는 제사장 직분과 관련되고, 권위의 보좌는 왕의 직분과 관련된다.

1. 하나님의 보좌에서 은혜를 위해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오고, 심판을 위해 불의 강이 흘러나온다.

2. 생명수의 강의 흐름은 물의 성인 새 예루살렘을 산출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불의 강은 불 못으로 흘러들어간다.

3. 우리가 은혜의 보좌를 만지고 생명수가 우리를 통해 흐르도록 허락할 때, 우리는 긍휼과 은혜를 받아서 때맞추어 도움을 얻는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있는 합당하지 않은 상황들을 심판하실 수 있도록 그분의 권위의 보좌를 만질 수 있다.

F. 하나님은 우리가 지성소, 곧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감으로 은혜의 보좌를 만지고 생명수가 우리를 통해 흐르도록 허락하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교통 안으로 이끌 것이고, 우리를 그분의 생명 안에서 건축되게 하여, 그분의 거처, 그분의 영적인 집, 그분의 거룩하고도 왕의 신분을 지닌 제사장 체계가 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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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주 6일

아침의 누림

살전 2:12 그것은 그분 자신의 왕국과 영광 안으로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께 여러분이 합당하게 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벧전 5:10 그러나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을 그분의 영원한 영광 안으로 부르신 분께서 잠시 동안 고난을 받은 여러분을 직접 온전하게 하시고, 견고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터를 튼튼하게 하실 것입니다.

帖前二12 要叫你們行事為人,配得過那召你們進入祂自己的國和榮耀的神。
彼前五10 但那全般恩典的神,就是那曾在基督耶穌裡召你們進入祂永遠榮耀的,等你們暫受苦難之後,必要親自成全你們,堅固你們,加強你們,給你們立定根基。

하나님은 육체 되심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은혜로 오신다. 그러므로 은혜는 육체 되신 삼일 하나님께서 근원이신 아버지와 요소이신 아들과 적용이신 그 영에 의해 믿는 이들 안으로 분배되신 것이다. 은혜의 근원과 은혜의 요소와 은혜의 적용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신성한 삼일성의 세 위격에 속한 것이다.

恩典乃是三一神在祂的成為肉體裡,由作源頭的父、作元素的子以及作應用的那靈(林後十三14),分賜給信徒。恩典的源頭、恩典的元素和恩典的應用,屬於神聖三一的三個身位,作我們的一切。

은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시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모든 것을 받았다. 우리는 은혜 위에 은혜를 받았고, 이 은혜는 하나님 자신이다.

恩典的意思是:「神是一切,神作一切,神給一切。」我們有什麼不是領受的?我們領受了一切。我們領受了恩上加恩,而這恩典就是神自己(羅馬書的結晶,二五二至二五三、二七四頁)。

오늘의 읽을 말씀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는 신성한 생명으로 그분의 양들을 먹이신다. …이제 주님은 생명 안에서 내적으로 우리를 목양하신다. 주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목자, 곧 생명의 목자이자 생명 안에 있는 목자가 되신다. 우리의 목자로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이 되신다. 사실상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이 그분께서 우리를 목양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고 우리 안에 사심으로써 우리를 목양하신다.

基督這位好牧人,……以神的生命餧養祂的羊。……如今主從裡面在生命裡餧養我們。我們在裡面有祂作我們的牧者,就是作屬於生命並在生命裡的牧者。活的基督是我們的牧者,不僅賜我們生命—祂對我們就是生命。主活在我們裡面,實際上就是祂的牧養。基督作我們的生命並活在我們裡面,藉此牧養我們(新約總論第二冊,二九二至二九三頁)。

영광은 하나님의 표현이요, 하나님께서 찬란하게 표현되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아브라함에게 큰 매력이었으므로 그를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분별시켰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은 아브라함에게 큰 격려와 힘이었으므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게 하였다.

榮耀是神的彰顯,就是輝煌的彰顯出來的神。神的榮耀對亞伯拉罕是極大的吸引,將他從世界分別出來歸給神。神的榮耀也是極大的鼓勵和力量,使亞伯拉罕能以跟從神(創十二1、4)。

베드로후서 13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 자신의 영광에 이르도록, 혹은 그분 자신의 영광에 의해 부르셨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베드로전서 510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영원한 영광 안으로 부르셨다고 말한다. 디모데후서 210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한 영광과 함께 있다. 이것은 영원한 영광이 하나님의 구원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를 그분의 영광 안으로 이끈다.

彼後一章三節說,神用祂自己的榮耀和美德呼召我們,或呼召我們到祂自己的榮耀和美德。此外,彼前五章十節說,神召我們進入祂永遠的榮耀。按提後二章十節,神的救恩乃是連同著永遠的榮耀。這指明永遠的榮耀是神救恩的終極目標(羅八21)。神的救恩領我們進入祂的榮耀(來二10)(新約總論第一冊,一三一頁)。

데살로니가전서 212절은 그것은 그분 자신의 왕국과 영광 안으로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께 여러분이 합당하게 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분의 선택에 따른 것이며, 또한 그분의 선택 이후에 온다. 한 때 우상 숭배자들이었던 믿는 이들은 사탄의 왕국 안에 있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통해 그들은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갔다. 하나님의 왕국은 그들이 신성한 통치 아래서,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누리는 영역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왕국과 함께 한다.

帖前二章十二節說,「要叫你們行事為人,配得過那召你們進入祂自己的國和榮耀的神。」神的呼召是照著祂的揀選,也是隨著祂的揀選(一4)。信徒從前是拜偶像的人(9),在撒但的國裡(太十二26)。現今藉著在基督裡的救恩,他們蒙了呼召,並已信入神的國;這國乃是他們在神聖的管治下,帶著進入神榮耀的指望,敬拜並享受神的範圍。神的榮耀與祂的國度並行。

데살로니가전서 212절에서 바울은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라고 권고한다. 만일 자신이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지 않으면서 누가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고할 수 있겠는가? 이 문제에서 …바울은 믿는 이들이 따라야 할 본을 세웠다. 12절은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 그분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그분의 영광 안으로 이끌리는 것에 관련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保羅在帖前二章十二節勸勉信徒,要他們行事為人配得過神。如果他自己行事為人配不過神,他怎能勸別人這樣作?他在這事上……立了榜樣,給信徒傚法。十二節指明,行事為人配得過神,與進入神的國並被引進神的榮耀有關(帖撒羅尼迦前書生命讀經,一二三頁)。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심으로, 그분의 영광을 표현하고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는 영역이다. 이러한 왕국 안에서 중요한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화평, 그리고 성령 안에 있는 기쁨이다.

神的國乃是神掌權的範圍,使祂能彰顯祂的榮耀,以完成祂的定旨。在神的國裡,所注重的不在於吃喝,乃在於公義、和平並聖靈中的喜樂(新約總論第九冊,一○二頁)。

오늘날 믿는 이들은 교회 안에서 왕국 생활을 한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서는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많은 훈련을 요구하는 매우 실지적인 문제이다.

今天信徒在召會中過國度生活,因召會在今世是神的國(……林前六10,加五21,弗五5)。這是一件非常實際的事,包含許多操練。

골로새서 411절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의 믿는 이들과 교통하면서 그의 동역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동역자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이 교회들을 세우고 건축하기 위해 복음의 일을 하는 것이 오늘날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것임을 가리킨다. 이것은 사실상 하나님의 왕국이 오늘날 사도와 그의 동역자들이 세우고 건축한 교회의 실재라는 것을 가리킨다.

在歌羅西四章十一節,使徒保羅與歌羅西的信徒交通時,告訴他們,他的同工是為著神國的工人,這指明他們為著建立並建造眾召會,在福音工作上所作的,乃是為著今天神的國。這就是說,神的國實際上是今天召會的實際,召會乃是使徒與他的同工所建立並建造的(新約總論第六冊,一八二、一八四至一八五頁)。
參讀:真理課程一級卷二,第二十三課;國度,第三至六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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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주 5일

아침의 누림

3: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그대에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물과 그 영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8:12 예수님께서 다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사람은 결코 어둠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約三5 耶穌回答說,我實實在在地告訴你,人若不是從水和靈生的,就不能進神的國。
八12 ……耶穌又對眾人講論說,我是世界的光,跟從我的,就絕不在黑暗裡行,必要得著生命的光。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생명이신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자신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거듭남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은 관념을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세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전환해야 하고, 율법에 대한 관념을 전환해야 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관한 우리의 세상적이고 타고난 관념을 전환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회개해야한다!

進入神國唯一的路,乃是接受神作生命,得著神自己;這就是重生。所以要悔改,就是要改觀念,改掉摩西的觀念、律法的觀念,甚至屬世、天然、事奉神的觀念,全數都要改一改。要悔改!(神的經綸與神聖三一輸送的奧秘,四○至四一頁)。

오늘의 읽을 말씀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신성한 영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태어나게 하셨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많이 모른다 하더라도 여러분 안에 있는 거듭난 영은 왕국을 안다.여러분의 영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은 하나님의 왕국을 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왕국을 안다.

當我們呼喊主的名,那神聖的靈就進到我們裡面,重生我們,把我們生入了神的國。雖然你對神國的事知道得很少,在你裡面的靈卻知道這國的事。在你靈中那神聖的生命認識神的國。……我們所以認識,因為我們已經生入了神的國(約翰福音生命讀經,一二三至一二四頁)。

하나님 안에 살기 원한다면, 우리는 생명의 영의 법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생명의 영의 법 안에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영 안에서 사는 것이 요구되는데, 이는 생명의 영의 법이 영 안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의 영의 법 안에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생명의 느낌 안에서 사는 것이 요구되는데, 이는 생명의 느낌이 생명의 영의 법의 느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명의 느낌에 순종한다면, 우리는 영을 관심하고 영 안에 사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영을 관심한다면,우리는 생명의 영의 법 안에 사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의 영의 법 안에 살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 산다. 결국 우리가 살아내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내는 것은 생명이며 우리는 생명사람들이 된다.

要活在神裡面,就必須活在生命之靈的律裡面。這就必須活在靈裡,因為生命之靈的律是在靈裡。這也必須活在生命的感覺裡,因為生命的感覺就是生命之靈的律的感覺。我們若跟從生命的感覺,定規是體貼靈,而活在靈裡。我們若體貼靈,也必是活在生命之靈的律裡面。我們活在生命之靈的律裡面,也就是活在神裡面。結果,我們所活出來的就是神。神就是生命,所以我們所活出來的也就是生命,我們也就是一個生命人(生命的認識,一二三頁)。

바울의 간증대로, 그는 길에서 하늘에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두루 비추는 것을 보았다’. 그때 주님은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빛 비춤과 주님의 말씀하심을 통해 다소의 사울은 어둠의 권세에서 구출되어 또 다른 영역, 즉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인 빛의 영역으로 옮겨졌다.

保羅……作見證說,他「在路上看見一道光,比日頭還亮」,四面照著他(徒二六13),不僅如此,主對他說,「掃羅,掃羅,你為什麼逼迫我?」(14)由於這光的照耀和主的說話,大數的掃羅就蒙拯救脫離黑暗的權勢,被遷入另一個範圍,就是光的範圍,也就是神愛子的國(歌羅西書生命讀經,四四頁)。

우리가 말씀을 듣고 생명을 영접했을 때, 이 생명은 우리 속에서 빛이 되어 우리를 밝혀 준다. 신성한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빛으로 우리 속에서 비추실 때, 우리는 그분의 빛 비춤 아래 있게 된다. 말씀을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신성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 생명은 우리 속에서 비추는 빛이 된다.

我們聽見了話,接受了生命,這生命就成為在裡面照亮的光,來光照我們。基督這神聖的生命在我們裡面作生命的光照亮,我們就在祂的光照之下。我們憑著接受話由神而生,就有神聖的生命,永遠的生命,這生命且成為在我們裡面照亮的光(新約總論第三冊,三八頁)。

빛이 하나님의 본성의 표현이듯이, 어둠은 악한 일들을 하는 사탄의 본성이다. 우리를 사탄의 어둠에서 구출하시어 신성한 빛 안으로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이 신성한 빛은 우리 안에서 운행하는, 아들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이다.

光是神在祂彰顯裡的性質,照樣黑暗是撒但在他邪惡作為裡的性質(約壹三8)。感謝神,祂已經拯救我們脫離撒但的黑暗,進入神聖的光裡(徒二六18,彼前二9)。神聖的光就是那在子裡的神聖生命,在我們裡面運行(聖經恢復本,約壹一5注3)。

실재는 곧 삼일 하나님이다. 삼일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안에 머물러 계시고 숨어 계시므로, 그분의 말씀은 실재이다. …우리는 이 말씀의 실재로 거룩하게 된다.

實際,就是三一神(約一14、17,十四6,約壹五6)。這三一神是包藏在祂的話裡,所以祂的話也是實際。……我們乃是在這話的實際裡得以聖別(約十七17注1)。

아버지의 말씀은 아버지의 실재를 함께 전달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은 빛이시다.’라고 말할 때에 말씀 안에 있는 빛이신 하나님을 전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실재, 곧 진리이며, 이것은 헛된 것과 거짓말인 사탄의 말과 같지 않다.

父的話帶著父的實際。當神的話說,「神是光」,這話就帶著是光的神。所以神的話是實際,真理;不像撒但的話是虛空,謊言(約八44)(十七17注3)。

요한이서 11절에서 진실은 진리에 해당하는 헬라어와 동일하다. …여기에서 진실은 계시된 신성한 실재, 곧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 안에 분배되신 삼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참됨과 성실함이 되신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사람이 신성한 빛과 일치하는 생활을 하고, 또 하나님의 존재에 따라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경배를 하기 위한 것이다.

〔約貳一節的真實,〕原文與真理同字。……本辭在此是指啟示出來的神聖實際—三一神在子耶穌基督裡分賜到人裡面—成為人的真實與真誠,使人過一種與神聖之光相符的生活(約三19~21),並且按著神的所是,照神所尋找的敬拜神(四23~24)(約貳1注3)。
參讀:新約總論,第二百五十至二百五十三篇;神的經綸與神聖三一輸送的奧秘,第三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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